서른이 읽어본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책 리뷰 작가 김멋지, 위선임

2020. 9. 19. 19:35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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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읽어본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책 리뷰 작가 김멋지, 위선임


둘이어서 더 의미 있는
나한테는 멋지와 선임처럼 각별한 친구가 있다.
우리는 취향부터 성향까지 닮은 점이 너무 많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하면 척이고
이렇게 가장 잘 통하는 만큼 같이 여행도 제일 많이 다녔다.

서른 즈음 나는 삶태기에 빠져 한창 우울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친구 역시 악덕회사에, 삶태기에, 결혼준비에 모든 것이 겹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선임처럼 친구 역시 몸에서 탈이 나기 시작 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친구 생각이 너무 나서
친구가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10년만에 처음 쓴 편지와 함께 이 책을 선물 했었다.

그맘때 우리는 정말 신기하게도 멋지선임처럼 딱 서른이였고,
친구가 된지 10년이 넘었으며, 사회생활 5년차에 접어들어
딱 그들이 여행을 떠나던 그 때와 아주 똑같은 상황이였다.

다만, 우리 둘 모두 서른이 되던 해에 나란히 야반도주 대신 결혼을 선택 하였지.

무튼 그래서 나에게는 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나는 늘 여행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가치 역시 '같이의 가치' 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멋지와 선임, 그 둘이 함께 였기에 가능했고, 더 빛이났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의 가치관과 맞았기 때문에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 생각나게 하는 책 이었다.


슬럼프에도 슬럼프가 오겠지.
나는 참 반복 되는걸 싫어한다.
음식을 안 가리는데, 유일하게 안 먹는 음식도 '어제 먹은 메뉴'다.
그러다보니, 1편에 말했듯, 모든 것에 익숙해 지면서부터 굉장한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감정을 이겨보려고 무진 애를 썼었다.
그러나 때로는 힘든 순간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애 쓰기보다는
그를 인정하고 꿋꿋이 동행하는 것이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일 때가 있다!

 

그제 같은 어제와 어제 같은 오늘, 그리고 또 오늘 같을 내일이 빠짐없이 돌아간다.

값이 만만한 어딘가에서 배를 채우고, 자그마한 물품들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고, 어떤 것도 힘을 들여 느끼지 않는다. 의미 없는 '의','식'과 짧은 '감응'을 며칠째 반복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숙소로 돌아온 저녁, 침대 위에 누운 선임이가 먼저 입을 뗐다.

"그렇게도 오고 싶던 쿠바에 왔는데, 그다지 즐겁지가 않다."

"......나도."

"오늘 술 한잔할까?"

"......좋지."

 

남은 술이 목구멍으로 넘긴 술보다 현저하게 적어졌을 즈음, 우리는 결국 대안을 만들어냈다. 조심스럽게 인정한 사실에 비해 너무도 간단하고 명료한.

이마저도 즐기자. 마음이 가는 대로 해보자. 피하지 않고 계속 마주하다 보면 슬럼프에도 슬럼프가 오겠지.

우리는 슬럼프와 멱살잡이하는 대신 깔끔하게 동행하기로 했다.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쿠바 편中

 

 

나는 같은 일을 끝없이 반복할 때 노동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로 인정받지 못할 때 나약해지는 사람이었다. 그걸 30년 인생을 살아낸 후에야 알아차렸다.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 요즘 우울했구나.'

이따금 집었던 딸기를 내던지고, 주먹으로 뭉개던, 나도 모를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밤, 목구멍에 걸려 있던 우울을 눈물로 한참 뱉어내며 선임이를 괴롭히다 잠이 들었다.

 

물론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라서 고난을 이겨내는 명랑한 여주인공처럼 마음먹었다고 상황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어김없이 눈물이 나왔고, 또 어김없이 뛰쳐나가서 펑펑 울었다.

딱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힘들어하는 내 자신을 인정하고 눈물을 그치고 돌아와 꿋꿋하게 딸기를 포장했다는 것뿐이다.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호주 편中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자!
'죽기 전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내 오랜 신념이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선택과 도전들은 모두 이 신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 신념을 잃고 기계처럼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이 신념을 되찾고 스스로에게 기름을 부어주고 있는 중 이다.

이들처럼 대단한 도전이지 않아도 되고 꼭 결과가 성공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일단 해보는 거다.
그런 순간들을 통해 얻는 재미 또한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는 그 감정을 잊지 말자!!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하루를 만들었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엄청난 선택과 결정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이 행동이 귀찮아도 움직여보느냐, 안 해본 걸 시도해보느냐, 긴장되더라도 견뎌보느냐, 조금 불편해도 참아보느냐, 뭐 이런 것들이었다. 본래 그런 작은 선택들 앞에서 대부분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선택했던 나는, 여행하는 동안 선임이에게 등을 떠밀렸다든가, 시간이 남았다든가, 심심했다든가 등등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행동하는 선택이, 늘 하던 것보다 색다른 선택이 새로운 재미로 이어진다는 걸 체득했다. 뭐, 늘 성공적이진 않았기에 뒤돌아서 더러운 욕을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늘 여유와 휴식이라고 애써 포장한 게으름의 껍질과 익숙함으로 기어들어 가는 관성을 조금 벗어낸 느낌이다.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한국 편中


코로나 끝나면 가야지
그냥 단순히 여행을 좋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여행이 나한테 주는 활력과 동기부여가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의미였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시기 이다.

언젠가는 오겠지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게 되면
이 곳들로 당장 떠나고 말리라!

다짐과 기록을 위해 책에서 좋았던 장소와 순간들을 남겨둔다.

눈 호강이라는게 바로 이런 거구나. 포르투갈어로 '고운,예쁜,아름다운'이라는 뜻의 보니투는 이름이랑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수중정원이었다. 눈앞에 녹색 수초들이 잔디처럼 여기저기 깔려 있고, 그 사이에서 브리콘이란 물고기의 은빛 비늘과 주홍빛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심이 낮아서 바닥에 있는 수풀이 수면에 바로 비치는데, 에메랄드 물빛과 수풀색이 조화로웠다. 이곳에 인어가 살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신비로운 세계였다.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브라질 편中

 

 

마침 새로 만난 다이버들과 태국 위스키를 함께 마시게 됐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나이트다이빙의 위대함에 대해 설파했다.

나이트다이빙을 해보지 않고 어디 가서 다이빙했다는 소리 하지 마라.

 

셀 수 없는 어둠도, 고작 2~3미터 앞이 전부인 동그란 시야도, 점점 익숙해졌다. 산호 가득한 바위에 다가가 바닷속 밤의 질서를 면면이 들여다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클럽 파티 중인 투명한 새우 떼였다. 동굴 속에서 그 많은 다리를 흔들며 삼바 춤을 추던 그들은, 빛을 받자 몸을 반짝이며 더욱 격렬하게 리듬을 탔다.

 

수면 위로 고개를 빼니 얼굴 위로 달빛이 내리고 별빛이 날린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소금 품은 밤바람이 그나마 남은 두려움까지 완전히 몰아냈다. 세상에 없는 세계를 몰래 다녀온 느낌이다. 방금까지 내가 어디에 있었던 거지?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태국 편中

 

 

저 멀리 어두운 수풀 사이를 헤치는 움직임이 보였다. 조용한 공기를 가르고 다가오는 걸음, 저벅저벅. 아아...... 코끼리 무리였다.

물웅덩이를 둘러싸더니 다들 코를 뻗어 물을 움켜쥐고 입으로 가져갔다. 자신들의 삶은 이렇다는 듯, 각자의 속도와 몸짓으로 여유 있게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물웅덩이를 둘러가며 걸었다가 잠시 쉬기도 했다. 아기 코끼리는 엄마 밑에 바짝 붙어서 물을 홀짝거리거나 바위에서 장난을 쳤다. 상상했던 모습보다 따뜻했다.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저 풀숲 뒤 펼쳐진 그들의 세계로. 움츠렸던 목과 어깨가 턱 풀리고 짧은 탄성이 나왔다. 드디어 보았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나미비아(쿠네네) 편中

 

 

출발했던 지점을 향해 모래언덕을 하나씩 넘어서고 마지막 높은 모래 산을 끙차, 넘어서는데, 이게 뭐야. 바다, 바다다. 사막에서 보는, 바다. 하......뭐냐. 심장 두들겨 맞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장관이라니, 사막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황홀함이라니!

 

짜릿함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다시 핸들을 당겨 바다를 향해 내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풋내 폴폴 나서 촌스럽지만 괜히 감동적인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나미비아(스바코프문트) 편中



끝!